2012년 01월 19일
닥치고 정치 - 김어준

주제의 무거움(?)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웃음이 나오는 흔치 않은 책이다.
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재밌다.
재밌는 책이 꼭 많이 팔리는 건 아니지만 이 책이 많이 팔렸다니 어쩐지 또 웃음이 나온다.
책의 내용이 궁금한 사람은 직접 사서 보기 바란다. 책이 좀 팔려야 저자도 먹고 살 것 아닌가. 그리고 딴지일보도 숨통이 좀 터일 것 아닌가. 그래야만 표현의 자유마저 억압하는 이 답답한 현실에 갇힌 우리도 더불어 '씨바' 라고, 비록 벽에다가 대고 소리칠지언정, 한 소리 칠 수 있을 것 아닌가.
그래도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이 낸 책이니 한 딴지 걸지 않고 넘어가는 건 좀 슴슴하다. 싱겁다. 그래서 나도 딴지 한 번 걸어본다.
저자가 책에서 '무학의 통찰'이라는 말을 하는 데 나는 이 말에 딴지를 걸어보기로 한다.
내가 보기에는 '박학과 다식에 의한 통찰'이기 때문이다. '무학'은 말 그대로 배움이 없다는 말인데 인풋이 없는 데 어찌 아웃풋이 있을 수 있겠나. 물론 책에서 김어준이 말하는 '무학'은 그저 가방끈이 짧다 정도로 해석하면 될 듯 하지만.
김어준은 책에서 본인 역시 80년대 학습세례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. 이를테면 <자본>과 <경제학- 철학 수고> <공산당 선언>등을 읽었다고 한다. 그리고 이 이론은 탁월하지만 시대의 한계내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.
20대에 <자본>과 <경제학-철학 수고> <공산당 선언>을 읽은 사람을 무학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. 본인 입으로 무학을 자처한다고 해도 말이다.
물론 달랑 위의 책 3권만 읽었다면 '무학의 통찰'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도 있겠으나 그럴리는 만무다.
맑스의 이론을 읽고 시대의 한계를 느꼈다면 당연히 그 돌파구를 찾아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지 않겠는가.
한 예로 '우파의 엔진은 공포다'라고 하는 저자의 말에서 키르케고르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. 키르케고를 형님이 말하기를 '공포는 대상이 분명하지만 불안은 대상이 불분명하다'고 하지 않았던가.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공포는 키르케고르식으로 말하면 불안에 가깝긴 하지만.
(더 쓸려니 막 귀차니즘이 발동한다. 그래서 그만 각설한다)
어쨌거나 책의 곳곳에서 프로이트와 라캉과 심지어 지젝의 냄새도 맡을 수 있었다. 아니 맡았다고 한 번 우겨본다.
그러니 순전히 내 입장에서 '무학의 통찰'이라는 김어준의 말은 '실패!'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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뱀발) 웃자고 한 소리에 죽자고 덤비는 놈들이 나타나면 대략 낭패!
# by | 2012/01/19 01:35 | 교양을 읽다 | 트랙백 | 덧글(0)




